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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조선족] 11.우린 78년급 제1소조 친구들(리광인)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민족기억 

사진 클로즈업 70년대 사람들

- 광인이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


리광인


12.우린 78년급 제1소조 친구들



연변대학 조문학부 78년급 제1소조 기념사진. 

오늘의 사진은 70년대 막바지에 찍은 78년급 제1소조 사진들을 중심으로 80년대로 이어진 사진들이 조금 섞이는 한편 오늘에로 이어진 우리의 채색사진들도 섞입니다. 78년급 제1소조의 인연이자 우정입니다...

이로서 1~12기로 련재된, 70년대 옛사진 련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여러 분들의 뜨거운 사랑과 성원에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


【수필】

 


우린 78년급 제1소조 친구들


 

이 세상에 태여나 주어진 삶을 살다보면, 소시적 소학시절부터 한창 시절의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이런 동창 저런 동창들이 수두룩하기 마련이다. 여러 시절의 동창들을 비교하면 그에 따르는 장점과 단점에 따라 느끼는 점이 다르기도 하지만 대학시절에서도 오는 정 가는 정으로 유난히 인상이 깊은 이들은 그래도 한 학급의 한소조 동창친구들인것 같다.





대학입시제도 회복의 첫 시대적 혜택을 받은 77년급, 78년급 대학생들. 연변대학을 례로하면 이들 77년급 대학생들이 1978년 3월에 입학할 때 우리 78년급도 몇달 뒤인 같은 해 10월에 입학하게 되였으니 77년급과 78년급을 통털어 대학입시제도 회복의 첫 혜택자들이라 하는 거겠지.

 

왜서 77년급과 78년급을 더불어 떠올리게 될가, 이는 이들 두기 대학생들은 중국 고등교육사상에서의 특수한 군체이고 엉킨 관계로 서로 갈라 볼수 없기 때문이리라. 정말 그러하지, 77년급 대학생들과 78년급 대학생들은 그 시절 이 나라 2000여만 청춘들속에서 솟아오른 특수한 력사시기 특수한 군체들이 아니였던가.



나도 그 특수한 력사시기 특수한 군체중의 일원이였으니, 대학으로 이어진 청춘렬차의 마지막 시대렬차에 오른 것은 1978년 10월. 그해 10월 20일, 길림성 연변을 중심으로 동북 3성에서 모여든 연변대학 조문학부 78년급 대학생들은 선후 61명이려니 그중 권명활, 남창송, 김명환, 지광철, 김송학, 리영화, 리정준, 리민덕, 강계화, 방금숙, 계영자, 엄영준, 태휘, 리광인 나 등 10여명으로 조문학부 78년급 제1소조로 무어졌다.

 

운명이였다. 이 운명은 우리 10여명 동창친구들을 하나의 운명권으로 얽어 놓았으니, 2012년 심양에서 가진 대학졸업 30돐 기념모임에서 강계화 친구는 우리 78년급 제1소조를 가리켜 “영원한 소조”요, 소조장인 나를 “영원한 소조장”이라고 칭하여 가슴 뜨거워났다. ㅎㅎ, 영광의 자리옵니다,  재밌는 유모아, “장”자 하나를 달랑 딴 인생의 말등 소조장.


 

다시 1978년 10월의 개학일로 돌아오면ㅡ

만나다보면, 같이 어울리다 보면 정이 생긴다고, 우린 장장 4년을 오는 정 가는 정, 고운정 미운정으로 얼키고 설키며 많고많은 우리 만의 인연, 우리 만의 옛말을 만들어 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유머로 풍기는 소조내 우리 침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옛말 하나는 우리 소조내 한 침실 8명 동창이 점심마다 대학식당에서 밥을 가져다가는 우리 절로 국이나 채를 만들어 먹던 이야기 아닐까.

 

그럴수밖에 없나부다. 그 시절로는 대학식당의 먹거리 채들이 지금처럼 각가지로 다채롭지 못한데도 있겠지만 늘 먹는 채들이 입에 당길수가 없다. 그래서 점심 한때는 자기절로 먹거리를 마련하여 절로 만들어 먹자는 주장이 나왔고, 한 친구가 하루 점심씩 맡아 나서기로 했다. 8명 친구이니 매 8일에 한번씩 자기 차례가 돌아오니 괜찮기도 하지.



신나는 하루하루가 흐른다. 매일 한번씩이나마 우리 구미에 당기는 먹거리를 이어갈수 있으니 매일 생일을 쇠는 기분속에 빠져본다. 나 당번이 돌아오면 친구들을 잘 대접하겠다면서 각별히 신경을 썼다. 학급에서 몇명 안되는 로임학생(带工资生)이여서 그럴만도 하였다. 그때 다른 친구들은 달마다 국가에서 내여주는 20원 좌우의 식비로 먹는 문제를 풀었지만 나는 로임학생인데서 식비요 뭐요 모두 자기로 부담하여야 했다. 지금 보면 그 시절 42원(처음은 37원) 월급쟁이 대학생 생활은 월등한 생활이기도 하구.

 


그런데 나의 작법이 실제를 떠난 같다. 나는 성의를 다하여 자기 당번에 충실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부담으로 안겨진다. 나보다 뒤지려 하지 않으니 매일 점심 먹거리 비용이 올라간다. 뒤늦게야 이 점을 보아낸 우리는 점심 먹거리 비용을 부담범위로 통제하여 갔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전기가 가면서 전기곤로가 무용지물로 되여버린다.

“에참, 딱 요때에 전기갈건 뭐야?!”

“에헤 민덕이 먹지 말라고 그러는거지.”

리정준씨는 민덕씨 말을 받아 넘기며 골려 준다.

“옳아 옳아, 민덕형을 굶어 보라는 거유!”

 

막내 리영화씨의 덩달아 놀림에 침실안은 한바탕 폭소판이다. 유모아를 즐기는 민덕씨는 뒤수덕을 긁적이더니 방법을 대보란다.


 

그때다. 웃침대에서 뭔가 골몰하던 김송학씨가 부랴부랴 내리더니 “방법은 무슨 방법이야.” 버럭 끼어들면서 가지고 내린 필기장에 라이터를 켜댄다. 그리곤 한장한장 태우기 시작한다. 오, 그것도 방법이구나, 우린 너도나도 필기장이요, 책이요를 찢어 들이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침실안은 종이재 냄새, 연기 냄새로 넘친다. 하건말건 먹거리가 끓여지면서 기다리기에 지친 우리 8명 친구들은 오구작작 떠들면서 모여 앉았다.

 

여보시오들, 필기장에 책을 찢어서 끓여먹는다는 말 들어 보셨소, 그 주인공들 우리였나이다. 신나던 점심 먹거리, 비록 이 노릇이 한학기인가밖에 이어지지 못했지만 우리 침실만의 이야기였다오. 이 이야기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로 되여 간혹가다 우리 침심친구들이 모여 앉을 때면 튕겨나오군 한다. 그럴 때면 우린 배를 그러안고 웃으며 흘러간 대학시절에 파묻기군 한다.



또 하나의 신나는 이야기는 그 시절 흔치않은 나의 갈매기표 사진기. 그 시절은 사진필림을 쓸때여서 얼마안되는 돈을 아껴가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필요한 친구들 사진찍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우리 소조 친구들이 대학기념을 남기자는 나의 청을 받아 들이였다. 70년대도 막가던 그 시절 우리는 대학의 정원(그땐 캠퍼스란 말을 모를 때였다.) 여러 곳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소조기념사진을 남기였다.

 


누가 말했던가, 먼 훗날 기념은 사진 뿐이라고, 그때그때 순간을 그대로 남기는건 사진 뿐이지,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오늘 글과 함께 뜨게되는 소조친구들 이모저모 사진들. 대학정문에서, 대학 도서관자리 2층 정문앞에서, 대학 정원의 배나무 밑에서, 연길시 공원 가까이 소나무밭 기슭에서 우린 그 시절 20대 청춘의 모습을 사진마다에 고스란히 남기였으니 지금 보면 얼마나 소중한 사진인지 모른다.



연길시 여러 사진관들에서 돈을 팔며 정중한 얼굴만을 주로 찍던 시절에 바깥에서, 더구나 대학의 정원에서 이곳저곳 소원대로 찍은 사진들이여서 그 소중함은 보다 알려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소중함은 더더욱 짙어가리니 대학시절의 사진을 감상할 때마다 젊음이 싱싱하던 20대 초반과 중반의 그날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세월속에서 그날의 20대들이 60대 초반과 중반의 어른 시절에 들어섰다. 40년 전 대학시절의 그 인연이 소중하여 이 몇년간은 내 고향 연변에 갈 때마다 자치부 수부 연길에서 삶을 영위하는 조문학부 78년급 제1소조 친구들인 리민덕, 리정준, 남창송, 지광철, 권명활 등 제씨들이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러면 우린 60대가 아닌 20대 그 시절로 돌아가 맘껏 뒹굴어본다.



인생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야 그 인연이 흐르는 법, 동삼성 여기저기서 모여온 우리들로서 때론 본의아니게 티격태격할 때도 없지 않다지만 그 때론의 티격태격도 오는 정 가는 정으로 벌어지는 한가족내 일. 마음과 마음으로 엉키어 진 우리 우정은 세월이 흘러도 너와 나로 변함 없는거지,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그리운 거지.


 

그래서 옛말에 “인생에서 지기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거늘 그 인생지기의 한 부분이 바로 우리 연변대학 조문학부 78년급 제1소조 친구들인거지. 우린 그 시절 그때의 인연으로 평생의 인생지기가 되여 오늘도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간다. 친구들아, 오늘도 내 고향 연변 2000리 밖에서, 연길과 심양, 대련... 쪽으로 우리 제1소조 친구들 하나하나를 호명해 본다...

 

2020년 3월 29일 









사진자료


사진자료





2020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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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选留言

  • 林东浩

     1

    선생님의 걸작들 빼놓히 않고 봅니다

    作者

     

    고맙습니다 !

  • 李成男

     

    소중한 동창시절 추억들을 기리며 사람좋아 영원한 소조장으로 빛나길 바랍니다

  • 李光仁(朋友)

     

    星一 珍贵 ! 2020.5.21

  • 李光仁(朋友)

     

    김정련ㅡ 소중한 영상 자료,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 2020.5.21

  • 李光仁(朋友)

     

    fjshuㅡ 감회가 새롭습니다.2020.5.21

  • 李光仁(朋友)

     

    知足常乐ㅡ 정말 소중한 사진이고 영원히 남는 순간이네요2020.5.21

  • 李光仁(朋友)

     

    한일성ㅡ 2020.5.21

  • 李光仁(朋友)

     

    리룡국ㅡ2020.5.21

  • 李光仁(朋友)

     

    꽃노을ㅡ 안녕하세요! 특수한 력사시기에 특수한 군체로 활약했던 교수님을 비롯한 옛학우들의 끈끈한 우정과 잊지 못할 추억이 담긴 뜻깊은 사연들ㅡ세월의 흐름따라 새록새록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사진들로 배합하고 제작된 아주 감회깊은 글을 잘 감상했습니다. 흘러간 력사속 한페지에 력력히 찍힌 발자국을 더듬어 영원한 기념으로 남긴 소중한 옛사진들을 정성껏 수집해서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에 1ㅡ12기로 련재된 70년대 옛사진과 멋지게 편집한 걸작을 온세상에 널리 발표,전파시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받고 알게된데 대해 애독자의 한일원으로서 무한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교수님의 이루다 헤아릴수 없는 로고와 아낌없는 심혈로 이루어진 원만한 성공ㅡ1~12기의 옛사진 련재 결속에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2020.5.21

  • 李光仁(朋友)

     

    한련분ㅡ2020.5.21

  • 李光仁(朋友)

     

    고승룡ㅡ2020.5.21

  • 李光仁(朋友)

     

    김병민 총장은 우리 78년급 첫 담임교원입니다 !!! 2020.5.21

  • 李光仁(朋友)

     

    박영만ㅡ2020.5.21

  • 李光仁(朋友)

     

    그렇네요. 김명환동창 한 학급이자 같은 소조, 한 침실이였지요 ! 2020.5.21

  • 李光仁(朋友)

     

    박영만ㅡ 흑룡강신문사 김명환 선배님하고 동창이셨네요. 하하하 , 김명환선배님은 저와 한 고향입니다. 흑룡강성 녕안현 발해진 향수촌, 그 유명한 향수입쌀이 나는 고장입니다. 연변대학 김병민 총장도 향수촌 출신입니다. 200여호된 우리 마을에서 흑룡강신문사 기자가 5명 나왔습니다. 오국안, 조영희(오국안의 부인) 김명환, 박영만 , 박영철 (박영만 동생) 감사합니다 ! 2020.5.21

  • 李光仁(朋友)

     

    박성철ㅡ 차분하게 잘 봤소. 그리운 얼굴들 다시 한번 봐야죠. 다시 못 보면 영영 못 볼수 있소. 2020.5.21

  • 李光仁(朋友)

     

    최미란ㅡ2020.5.21

  • 李光仁(朋友)

     

    최정일ㅡ220.5.21

  • 李光仁(朋友)

     

    龙爸--斗弼 그 학급에 리영화도 있었구만, 소년보에 있던 친구… 2020.5.21

  • 李光仁(朋友)

     

    김두필ㅡ 리광인 안녕? 대학의 사진을 잘 넣었소, 그래 나도 고향의 박상룡도 보고 많은 친구들을 볼수 있어 참 좋소. 그반에는 참 재간이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구만, 정말 부럽수다! 2020.5.21

  • 李光仁(朋友)

     

    英智ㅡ2020.5.21

  • 李光仁(朋友)

     

    최진옥ㅡ 추억을 불러오는데는 사진만한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과 함께 감상 잘했습니다. 살아가는동안 젊은시절 력사의 한페지한페지를 기록해 두셨네요. 얼마나 보귀한 사진입니까?! 2020.5.21

  • 李光仁(朋友)

     

    한춘옥ㅡ 기록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낌니다2020.5.21

  • 李光仁(朋友)

     

    권명활ㅡ 세월이 흘러 산천은 변해도 언제나 잊지 못할 소중한 학창시절, 언제나 잊지 못할  다정한 동창들! 2020.5.21

  • 李光仁(朋友)

     

    권정옥ㅡ 동창님께서 손수 찍은 사진과 세절까지 일일이 생동하게 표현한 글들로 하여 근 40년전의 즐겁고 뜻깊었던 대학생활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릅니다.2020.5.21

  • 任顺姬

     

    꿈많은 학창시절의 달콤한 추억들..넘생동하구 재미있었어요.마지막이라니 섭섭한 마음도 있고.. 또한 자기공부하면서 로임까지 받았다니 아주 복많은분이십니다.

  • 朱青龙

     

    좋은 추억이군요. '캠퍼스' 보다 우리말의 '정원' , '교정' 이 더 정감적으로 느껴지는데요.

  • 云帆박삿갓

     

    대학시절 아리송한 추억이 사진들을 통하여 새롭게 진하게 떠오르는구려.로형께서 로임족이여서 대학생보조금이 소수민족보조금까지 17.50원인줄 모르셨구려




  • 력사학자 리광인   

    리광인 (李光仁)


    리광인 프로필 (필명 리함)


    ▲ 길림성 화룡시 태생

    ▲ 1982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본과 졸업

    ▲ 연변일보사, 연변력사연구소, 절강월수외국어대학 한국어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퇴직.


    저서 (30부)

    《겨레 항일지사들》 (전6권)

    《조선족력사문학연구문집》(전2권)

    《광복전 겨레 작가론》

    《홍군장령 양림》(평전)

    《백포 서일장군》(평전)

    《최음파평전》

    《무정장군》(평전) 등


    주요수상 

    2006년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평론본상

    2013년 “연변작가협회” 실화문학 대상(《》홍군장령 양림)

    《홍군장령 양림》(평전). 2011년 중국작가협회 국가급중점작품지원프로젝트 획득

    《무정장군》(평전). 2013년 중국작가협회 국가급소수민족중점작품지원프로젝트 획득 등


    [부록] 리광인 저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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